뉴스를 보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상반된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삼성의 이재용이 BYD등 중국기업과 협력관계를 모색한다는 뉴스가 나오는 한편, 현대차는 미국에 4년동안 31조원 약 2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다는 발표를 했다. 1987년이후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이 210억달러라고 하니 현대가 앞으로 미국에 투자하는 자금은 엄청나다. 신문에 따르면 현대는 미국에 57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대가 한국에 투자했다면 한국에 57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랬다면 한국의 일자리 문제도 많이 해소되었을 것이다.
현대차의 미국에 대한 투자 뉴스를 보면서 '아리기'의 '장기20세기'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리기는 1980년대 일본의 미국투자는 미국과 소련간의 경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일본의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소련과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패권유지에 있어서 한국이 중요한 실질적인 기여자로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패권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리기의 장기20세기중에서 미소간 패권경쟁과 일본의 투자에 관해 정리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승자를 후원하고도 투입한 자본에 대한 대가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1985년 이후 미국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일본자본은 손실을 크게 입게
된다. 이로 인해 일본정부는 그 전에 미국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제공하던
금융지원을 철회1987년 중반에는 1980년 초 이래 처음으로 일본의 사적 투자자가 미국에
투자를 줄이게 됨1987년 10월 주식시작 폭락이후 일본 대장성은 1987년 11월의 중요한
미국국채 경매에서 금융중개업자들이 국재를 사도록 하는데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음일본이 미국에 투자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은 미국 정부가 일본돈이 미국 적자와 국제수지 적자를 줄여주는 것은 환영하면서도 수익성은 있지만 전략적으로 민감한 기업의 인수에 쓰이는 것은 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리기는 '소련과의 냉전이 마지막으로 격화할 때 일본자본이 경제적으로 미국을 지원한
대가로 얻은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지금 미국은 중국 및 러시아와 패권경쟁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지정학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소위 국제정치 전문가들도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는 것 이상으로 러시아와의 경쟁에 대해서도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비용을 따지자면 미국은 중국과 경쟁보다 러시아와의 경쟁에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패권국가의 조건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위치다. 패권과 위치의 문제를 언급한 것도 '아리기'다. 베네치아, 네덜란드, 영국, 미국 모두 지리적 위치가 패권국으로의 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보면 러시아는 앞으로 가장 중요한 교역로가 될 북극항로를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 것도 북극항로 때문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현재 미국은 외부로부터의 자금이 절실하다. 지금 미국은 소련과 경쟁할 때 일본과 같이 미국에 투자해줄 국가가 없다. 일본도 유럽도 미국의 국채를 사줄 수가 없다. 중국은 지속적으로 미국의 국채를 팔아치우고 있다.
미국은 막대한 외부의 자금이 수혈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등장이후에도 미국 국채 10년물은 여전히 이자율 4.3%선 에서 머물고 있다. 미국은 시중은행에게 미국국채를 사게 하려고 각종 제재를 완화하는 모양인데, 그런 제재해제는 언젠가 다시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패권경쟁에 승리할 수 있을 정도로 외부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미국은 냉전처럼 국가단위의 투자를 통한 적자해소가 불가능하니 기업단위의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앞으로 현대차와 같이 미국에 대규모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 가전이나 자동차 같은 회사는 미국에 울며겨자먹기로 생산시설을 옮겨야 할 지도 모른다. 한국의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할 하면 할수록 한국의 고용여건은 더 악화될 것이다.
반면 삼성은 눈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는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에 이미 미국에 투자를 했지만 사실상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삼성과 하이닉스 같은 회사는 더 이상 미국에 투자할 여력이 별로 없을 것이다. 삼성은 새로운 투자보다는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문제는 미국의 압력을 얼마나 피할 수 있을 것인가가 될 것이다.
결국 한국기업들은 미국 시장과 중국시장을 두고 저울질 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대차는 전기차로는 중국기업과 승부를 할 수 없으니 미국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서 미국시장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현대차의 결정은 적시적절하다 할 수 있으나 앞으로의 경기침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