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각자도사 사회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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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송병기

의료인류학자. 파리대학교병원 의료윤리센터와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생애 말기 돌봄을 연구했다.

프랑스와 모로코의 노인요양원, 일본의 노인요양원/호스피스, 한국의 대학병원/호스피스/노인요양원/노인요양병원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성찰하다"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

생애 말기 돌봄 앞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도생 혹은 각자도사 한다.




책 저자는 프랑스와 모로코의 노인 요양 시설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한 뒤 일본과 한국의 의료 현장에서 말기 돌봄 시스템을 마주하며, 죽음이 개인적인 '사건'이자 공동체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질문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책을 지었다.




이 책을 읽고 있고 나니, 지방에 계신 부모님이 지금 보다 더 연로하셔서 돌봄을 받아야할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나는 나중에 나이들어 아프거나 노쇠하여 거동을 혼자 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중 일부



때가 되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점에서 죽음은 평등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존엄한 노년과 죽음은 돈이 많거나 운이 좋은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곳에서 죽음은 불평등하다.




사람들은 '존엄한 죽음'보다 '깔끔한 죽음'을 원했다.

깔끔한 죽음을 존엄한 죽음이라고 여겼다.

몸을 '생산가능' 여부로 판단하고, 돌봄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며, 제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곳에서 희망할 수 있는 죽음이란 신속하고, 정확하고, 효율적인 자살이나 안락사였다.




현실에서 죽음은 의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

죽음은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내가 사는 일상,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이야기로 국한할 수 없다.

존엄하게 죽기 위해서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안에 있어야 한다.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노인에게 집은 안식처라기보다는 고립된 장소다.




오늘날 생애 말기 돌봄은 대개 여성이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 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안에 들어와 있어도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조건은 비참하고, 제도 밖에 있는 간병인은 저임금인 데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실정이다.

요양보호사의 돌봄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어르신'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한편, 건강보험에 간병급여가 빠져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의 간병은 보호자가 하거나 환자가 간병인을 직접 고용해서 해결해야 한다.

불안정한 노동/의료/복지 구조 속에서 요양보호사, 간병인, 환자, 보호자 모두 위태로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언론에서 고발하는 시설 내 노인 학대나 환자 소외의 본질을 노동자의 도덕성이나 전문성 결여가 아니라 흔들리는 삶의 조건에서 찾아야 한다.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운(가족운, 간병인운 등)이 좋아야 한다.

생애 말기 돌봄 앞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도생 혹은 각자도사 하고 있다.

(...) 환자 곁에서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회적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다.

가뜩이나 옹색하고 시혜적으로 보이는 공적 돌봄을 받기 위해서 환자는 자신의 몸과 집의 비참함을 증명해야 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환자는 집에 고립되거나, 군말 없이 요양원 또는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사람들은 의료와 돌봄의 분리를 당연하게 인식하는 동시에 일상에서 돌봄과 의료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경계를 무 자르듯 쉽게 나눌 수는 없다.

의사가 없는 요양원에서도 의료는 중요한 요소이고, 요양보호사가 없는 요양병원에서도 돌봄은 필수적이다.

돌봄과 의료는 요양원과 요양병원 사이에서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




개인과 국가 모두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많이 필요했다.

정부는 요양병원의 설립 허가 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2008년 1월부터 일당정액제(환자의 상태에 따라 입원 1일당 정해진 금액 내에서 서비스 제공)를 적용함으로써 비용 통제를 했다.

게다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의료가 아닌 수발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임을 분명히 했다.

그렇게 '노인 의료는 요양병원에서, 노인 수발은 요양원에서'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부는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이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공급을 늘렸다.

요양병원의 수는 2000년 13개에서 2019년 1500개를 넘어섰다.

요양원의 수도 2008년 1700여 개에서 2019년 5300여 개로 폭증했다.

대다수는 민간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다시 말해, 저출산/고령화 위기 속에서 등장한 노인 부양 정책은 민간 시설의 설립과 운영 규제는 완화하되, 비용 통제는 강화했다.

그 결과 노인 환자와 병상 수는 빠르게 늘었지만, 의료진과 돌봄 노동자 수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입소자 20명을 돌보는 요양원이 나오고, 간호사 한 명이 환자 40명을 관리하는 요양병원도 등장했다.

이런 환경에서 의료진과 돌봄 노동자가 노인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존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의 정책은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보다는 수급자가 취약한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수급자인 할머니가 소일거리로 생활비를 벌충하고, 질병을 유지하고, 딸과 거리를 두는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어설프게' 돈을 벌거나 건강하거나 딸과 교류를 하다가는 수급자 자격을 박탕당할 수 있는 구조였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의료전달체계상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은 환자의 중장기적 안정보다는 새로 들어오는 위중증 환자 치료에 우선순위를 둔다.

따라서 병상 회전율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건강보험 수가가 낮고 비급여 진료도 거의 없는 입원 환자는 주요 정리 대상이다.

이러한 의료전달체계와 건강보험 수가의 난맥상으로 수술 이후 환자 돌봄은 사실상 가족 및 보호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로 남는다.

한편, 암 환자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돌봄을 받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중증 환자는 의사가 없는 요양원('수발'을 전제한 복지시설)에 가고, 경증 환자는 의료진이 있는 요양병원('시술'을 전제한 의료시설)에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생애 말기에 강조되는 윤리가 당사자인 노인을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사회가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된 문제를 윤리의 이름으로 가족, 특히 여성(요양보호사, 간호사, 딸, 며느리 등)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존엄하지 못한 돌봄의 경험은 존엄하지 못한 죽음으로 이어진다.




말기 의료결정은 환자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가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환자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었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은 저마다의 이유로 '죽음의 타이밍'을 고민했다.

죽음은 타이밍의 문제였다.




오늘날 웰다잉의 유행은 그만큼 사람들이 잘 죽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자, 죽음이 개인의 노력으로 대비해야 하는 일이 됐다는 방증이다.




생명은 연장됐는데, 한국 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살한다.

사람들은 죽을까 봐 두려운 게 아니라, 죽지 못해 살까 봐 두려워한다.



202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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