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독서중] 순교자(김은국)

in zzan •  21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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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이야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자네들은 그걸 줘야 하는 거야. (중략) 자네들이 그러는 건 선전을 위해서, 교회를 악명에서 구해내기 위해서야. 만사 괜찮아질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그들을 잘 잘 보살펴주시고 국가는 그들의 운명을 진지하게 걱정해주고 그러니 만사 괜찮을 것이다 - 사람들이 이렇게 믿게 하기 위해서지.
난 지쳤어. 이 모든 가식, 이 모든 것이 이젠 역겨워 견딜 수 없어. 그동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난에 시달리고 여전히 죽어가란 말이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속고 기만당한 채?" (p213)

김은국 작가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의미있는 작품을 낸 작가인지 이제야 알게 된다.
[순교자]라는 작품을 1964년에 썼으니 작가의 나이 서른 세살 경이다.
영문 소설을 번역한 도정일은
'문제구성력의 결정적 빈곤은 한국소설이 대체로 안고 있는 오래된 고질의 하나이자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지방적 한계의 하나다. 소설 속에 사건은 있으되 그 사건을 구성하는 방식들이 인간의 삶과 운명에 관한 보편적 주제의 특수한 탐색으로 나가지 못하는 지방적 한계다. 이 소설의 중요한 점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어떤 한 특수한 사건을 인간의 보편적 운명에 관한 세계문학적 주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p317)
라고 평가했다.

아닌게 아니라 죽음과 삶, 인간과 신 등 거대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다들 알고 있지만 차마 다루기 어려운 주제 아닌가.

서론이 길어졌다.
한국 전쟁의 평양 탈환 후 정보 장교로 복무하게 된 '나'는 평양 시내의 교회 목사 열 네 명이 공산당에 의해 처형된 걸 알게 된다.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순교자를 기리는 기념예배를 준비하라는 대령의 명령을 수행하다가 그 중 두 명의 목사가 살아남은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던 걸까. 혹시 배반이나 밀고 덕에 살아남았던 건 아닐까. 신도들은 이 두 목사가 배신자라며 시위 한다.
조사에서 드러난 것은 목사들이 '순교'한 게 아니라 '희생' 당했다는 것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켰던 게 아니라 서로 배반했다. 가장 존경을 받던 박 목사는 총살형 바로 앞에 주어진 마지막 기도 시간에 다른 목사들의 애원을 무시하고 기도를 하지 않았다. 그는 몰아치는 절망에 하나님을 의심하며 절대 고독 속에 사망했다는 신목사의 증언이었다.
박 목사의 아들이 주인공의 친구 박군이다. 박군은 무조건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압력에 반항하여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대학에서 주인공과 동료 강사로 만났는데, 아버지의 신앙과 자신의 신앙을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신도들은 마음 의지처를 찾고 싶어했고 또 '유다' 신목사를 처단하고 싶어했다.
남한 군부대측에선 시민들을 안정시키고 종교 탄압이 없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려고 한다. 대령은 열 두명의 목사를 순교자로 추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들은 순교가 아니며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주인공의 의견이 대립한다. 이 때 신목사는 사실보다는 모두를 위한 방법을 택한다. 자신은 살아 남은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목사 한 사람씩 어떻게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는지 신도들에게 설명했다.

중공군이 밀려 내려왔고 평양에서 철수하는 와중에 주인공은 중병이 든 신 목사를 데리고 남하하려 했지만 그는 끝내 신도들을 지키겠노라 한다. 신 목사는 주인공에게 당신은 당신의 신앙을 지키라는 말로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위로 한다.
주인공은 다른 부대를 지휘다하다 부상을 입었고 이 때 피난민들 입을 통해 평양에 있던 신 목사 소식을 듣는다. 그를 봤다는 사람들과 공개 처형 당했다는 사람 등 말은 달랐지만 신 목사는 이미 거룩한 자가 되어 있었다.

다 읽고 난 생각이 김은국 작가는 기독교 신앙인이었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싶다.
성경 인용이 상세한 것이 그 증거이고, 신앙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한국 기독교는 안그런 분이 더 많은 데도 목사의 신념에 따라 무조건적인 추종으로 흘러 비기독교인들의 외면을 받기 일수다. 한국 기독교는 우리 역사에 분명한 공헌이 있고, 근대 정신사에 빠질 수 없다.
그럼에도 전쟁으로 무수하게 죽어나가는 목숨을 보면 신의 뜻에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런 내용의 작품이다.


** 저자는 193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고 평양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남한으로 내려와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1950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이 터져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를 둘 낳았고 미국 대학에서 영문학과 강사 생활을 했다. 작품 발표 이후 한국을 찾아 TV 프로그램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 한국 전쟁 등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2009년 77세로 암 투병 중 미국에서 사망했다.

** 하나님의 표준 표기는 하느님이지만 원문의 하나님을 따랐다.


김은국 / 도정일 역 / 2010(원 1964) / 문학동네 /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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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스팀잇 포스팅 큐레이션 이벤트 참여자 글 - 202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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