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의 <해내동경>편에는
강이 몇 개 등장하는데 그중에 요수가 있다.
潦水(요수)는 위고(衛皋) 동쪽에서 나와 요새 밖 위고산(衛皋山)에서 발원한다. 현토군(玄菟郡) 고구려현(高句驪縣)에 요산(潦山)이 있는데, 소요수(小潦水)가 여기서 나온다. 서하(西河)[注, 대요수(大潦)다. '료(요)遼'라고 읽는다.] 동남쪽으로 흘러 발해(渤海)로 들어간다. 요양(潦陽)현으로 들어간다. 요양현(潦陽縣)은 요동(潦東)에 속한다.
이 기록이 담긴 그 페이지에는 오직,
산서성 남부에 있는 강들만 들어있다.
그런데
6세기에 저술된 <수경주 권14>에서
"대요수(大遼水)는 새외(塞外)의 위백평산(衛白平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새(塞)로 들어가며, 요동(遼東)의 양평현(襄平縣) 서쪽을 지난다."
라는 기록을 남긴다.
모두가 알다시피 '요동'은 사활을 건 요충지였다.
당나라에게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도 사라지고
마침내 대륙의 역사가 현재의 백두산까지 확장되면서
이 '요동(遼東)'이
지금의 랴오닝성 요양으로 움직여버렸다.
그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역사에 관심없고
그저 주어진 책에 적힌대로 그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어떻게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꿰맞추려고 대수술을 한것이다.
감히,
고조선과 고구려가 지금의 하북성 일대에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공자의 신도들이나
일제가 만들어준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우리들이나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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